[무비토크] 씨네마실 03

홈 > 무비로그 > 무비로그
무비로그

무비토크

[무비토크] 씨네마실 03

작성자 - 인디하우스

리뷰내용


씨네마실 무비토크 03 



상영작 : <용서>(조찬휘), <크리스마스에 바다>(조남현)


일시 : 2020.09.29 (화) 19시


모더레이터: 세손가락 회원 박송희 , 장윤아


녹취: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


장소: 포남포남 




36d8c5e62be97d47e51ab513cc592b3b_1614754090_3793.jpg



박송희 모더레이터(이하 ‘모더 1’)

씨네마실 상영회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영화 즐겁게 보셨나요? 저희는 오늘 상영회 모더레이터를 맡은 세손가락의 박송희, 장윤아입니다. 


장윤아 모더레이터(이하 ‘모더 2’)

먼저 세손가락을 소개할게요. 세손가락은 강릉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청년 문화예술 단체입니다. 영화를 비롯해 연극,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활동을 하고 있고, 멤버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프로젝트로 진행합니다. 앞으로 세손가락 활동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관객분들도 영화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우선 저희가 준비한 질문으로 조남현, 조찬휘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어서 관객 여러분의 질문을 받는 식으로 무비토크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모더 1

조남현, 조찬휘 감독을 자리에 모셨는데요,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조남현

<크리스마스에 바다>를 만든 조남현이라고 합니다. 지역에서 자랐고, 지역에서 자라며 느낀 것들을 영화로 만들어보고자 노력 중인 사람입니다.


조찬휘

<용서>를 연출한 조찬휘입니다. 강릉에서 촬영, 편집, 연출 작업을 하면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모더 1

두 분 모두 강릉에서 영화를 만들고 계신데, 지역에서 영화인으로 활동하면서 겪는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조찬휘

제일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장비 문제였던 것 같아요. 촬영에 필요한 장비도, 인력도 매우 한정적이죠. 지역 문화예술계에 예산이 많이 편성된다고도 하는데, 실제 체감하기로는 예산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비와 인력이 항상 부족한데 예산은 없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조남현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공적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중앙의 영화 제작 관련 공모사업 중에 지역 기반 영화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여기에 지역에서 따로 편성한 영화 지역 예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냐고 물어보면, 사실 그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가하면, 중앙에서제작된 영화 중에도 지역 이야기를 담은 것들이 많은데, 이런 영화들이 지역이 아닌 중앙의 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런 점에선 상대적으로 봤을 때 중앙보다 지역의 영화 판에 공적 자금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겪은 어려움은 아무래도 장비를 확보하는 거죠. 지역엔 장비를 빌릴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서울로 차를 몰고 가서 장비를 빌려 싣고 지역으로 와야 하거든요.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같이 작업할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데, 이들 중 누가 작업 중이면 그 작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들에 구애를 덜 받고 싶어서 이번 작품은 좀 무턱대고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는데, 이 친구들을 지역에 불러 모아서 작업해야 한다는 것 또한 어려운 점이었죠.

 

모더 1

장비 대여도 그렇고, 다른 지역 스태프까지 동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군요. 두 분 모두 지역의 영화 창작자로서 비슷한 어려움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모더 2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선 <용서>부터 시작해볼게요. 영화 길이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용서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이랄까요. 영화 내용과 제목의 의미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찬휘

영화를 준비하며 레퍼런스 작품들을 찾아봤어요. 그중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주인공의 아들이 살해됐는데, 그 살인자는 교도소에서 ‘나는 교회를 다니며 주에게 용서를 구했고, 나는 용서받았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을 보면서 피해자의 답답한 심경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그래서 사람들에게 분노보다 용서가 더 이롭고 좋은 감정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빌어도 용서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가령 가해자가 용서할 마음가짐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사과했을 때, ‘사과했으니 용서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적·관습적으로 형성된 인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흔히 용서를 구할 때 상대에게 악수를 청하잖아요. 그래서 손 자체가 용서를 나타내고, 손목을 자르는 행위가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모더 2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주인공이 꿈속에서 괴한에게 반말하는 장면이 있죠. 저라면 그 상황에서 ‘살려주세요’하고 존댓말을 할 것 같은데, 주인공은 반말을 해요. 그래서 주인공이 괴한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찬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명확하지만, 가해자가 ‘난 그다지 미안하지 않은데 그래도 사과한다’고 생각할 만한 상황을 그려봤어요. 예를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회사에 다니고, 가해자는 그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할 때,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형식적으로 사과하고는 ‘이제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죠. 피해자는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님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줘야 하고요.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모더 2

점점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네요. 지금 제 손엔 관객들의 질문이 적힌 포스트잇이 있는데요, 괴한이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동작의 의미를 질문해주셨습니다. 

 

36d8c5e62be97d47e51ab513cc592b3b_1614754356_9362.jpg
 

조찬휘

앞선 예시를 이어서 이야기해보죠. 가해자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데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불리할 것 같고 또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서, 사실 그다지 사과하고 싶진 않지만 피해자에게 사과합니다. 이런 사과를 받고 피해자는 그 사과가 진심이 아니고 가해자 본인을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분노할 수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낄 격한 감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더 2

이어서 두 번째 포스트잇 질문입니다. 잘린 팔 소품의 정체가 무척 궁금하다고 적어주셨네요. 

 

조찬휘

아, 팔이요. 계속 고민하다가 팔 더미(dummy)를 찾았는데, 너무 비싼 거예요. 배우 출연료보다 더 비싸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일동 웃음). 그래서 다른 방도를 찾다가, 정육점에서 생돼지 다리를 샀어요. 집에서 직접 톱으로 잘라보기도 하고, 식용색소도 주입해봤죠. 괜찮은 결과가 나와서 돼지 다리로 잘린 팔을 연출했어요. 3 테이크 정도 찍고 추가 촬영까지 해서 만든 장면입니다. 색 보정도 따로 하고요.

 

 모더 1

아주 리얼하게 잘 만드셨더라고요. 처음 봤을 때 너무 무서워서 ‘뜨악’ 했는데(관객 웃음)...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모더 2

마지막 질문입니다. <용서>는 ‘돌려 돌려 영화판’ 이란 팀에서 탄생한 영화라고 들었어요. ‘돌려 돌려 영화판’은 어떤 팀인가요? 또 팀에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조찬휘

‘돌려 돌려 영화판’은 ‘돌돌영’이라고 부릅니다. 돌돌영을 만들게 된 건, 지역에서 다들 영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각자 하는 파트 일밖에 못 하는 게 아쉬워서 주로 하던 파트 말고 다른 걸 해보기 위해서예요. 저도 연출을 맡은 건 <용서>가 처음입니다. 지역에서 영화를 배울 기회가 많지 않으니 우리끼리 놀면서 하고 싶은 작품 만들어보자는 의지로 만들어진 팀입니다.  


모더 2

이제 <크리스마스에 바다> 이야기를 해볼까요?   


모더 1

영화에 크리스마스와 바다의 이미지가 담겨 있어서 제목과 작품이 잘 어울려요. 또 주인공 이름이 ‘바다’이기도 하죠. 바다는 기숙사를 나와 오랜만에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에서도 편하게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녀요. 바다도 가고요. <크리스마스에 바다>에선 주인공이 가는 공간과 공간의 이동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남현

이 자리가 <크리스마스에 바다>의 첫 GV인데, GV를 상상할 때마다 고민했던 게 있어요. 이 작품은 개인적 동기는 분명하지만, 관객이 보기에도 그 동기가 충분한지 늘 의문이었어요. 그렇다면 GV에서 제 개인적 동기를 이야기해야 할 텐데, 이게 좀 고민이었거든요. 첫 GV이니까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번 작품을 만들기까지 영화 몇 편을 연출했고, 촬영이나 편집 작업도 했죠. 하지만 ‘나’로부터 출발한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영화를 만들어온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 가는, 일종의 ‘성장통’ 같은 경험, 내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는 작업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서사로 풀어내기엔 내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다는 오랜 고민이 있었어요.  하지만 더 늦어지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고 내려놓게 될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에 바다>를 만들게 됐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룬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동생은 정신 장애가 있어요. 하지만 함께 자라면서 동생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어요. 제게는 당연한 일인데, 주변에서는 ‘너는 친구들에게 동생의 장애를 숨기지 않는구나’, ‘동생을 참 예뻐한다’, ‘부모님이 동생만 예뻐한다고 질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넌 그러지 않았다’ 하고 칭찬했어요.

그런데 그런 칭찬이 제게 일종의 훈장이 되면서 점점 더 제가 원하는 걸 말하는 게 어려워지는 거예요. 영화를 준비하며 제 과거를 돌이켜 보니, 제게도 이런 마음이, 준비된 이야기가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영화를 잘못 만들면 부모님께서 이 ‘훈장’을 제가 원망한다고 느끼실 것 같아서 우회적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새로운 가족 형태를 만들었어요. 

음, 그런데 질문은 로케이션에 관한 것이었죠? (웃음) 원래 질문으로 돌아오면, ‘집’이라는 공간에서 저를 답답하게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대학이 다른 지역에 있어서 자취를 해야 했지만요. 집을 떠나면서도, 다시 돌아왔을 때 예전처럼 동생이랑 친한 형제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떠나 있었던 탓에 어느 순간 동생을 잘 알지 못하게 됐어요. 그런 경험들을 영화에 투영했습니다. 영화에서 ‘금진항’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방파제에 둘러싸인 항구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보호받는 공간이지만 주인공 ‘바다’는 등대 바깥세상을 동경하고 그 너머로 나가고 싶어하죠. 그러면서도 항구 안에서 잘 살아가는 존재이고 싶어하고요. ‘바다’는 이 두 마음을 전부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장소 한곳 한곳에 특정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주인공이 자꾸 항구 안에서 밖으로,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물론 마지막엔 집에서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죠. 너무 길게 이야기했네요(관객 웃음). 

 

모더 1

로케이션에 관한 질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다양한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것도 참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제 관객들이 포스트잇에 적어주신 질문을 볼게요. 로케이션 장소가 많은데 특정 장소를 정해두고 시나리오를 썼는지 궁금하다고 적어주셨는데, 이 질문을 적어주신 분께 좀 더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관객 1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그런지, 영화 속 장소들을 추측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영화에 한 지역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이 나온 것 같기도 하고요. 미리 촬영 장소들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쓰셨는지, 아니면 이야기를 쓰면서 장소를 결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각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고 싶고요(웃음).

 

조남현

미리 정한 장소는 금진항 한 군데밖에 없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내가 로케이션 매니저가 되어줄게’라고 하시더니 드라이브를 시켜주셨어요. 현재 금진항 마을에 ‘탑스텐’이라는 호텔이 있는데, 그 호텔이 들어설 공터에 차를 세우시고는, ‘여기서 항구를 내려다봐라, 정말 좋지 않니?’ 라고 하셨어요(웃음). 처음으로 아버지께 선물 받은 공간이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이 금진항 말고는 미리 정해진 장소는 없었고, 나머지는 드래곤볼 모으듯이 정했습니다.

‘바다’의 집은 금진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펜션 중 마당이 있고 될 수 있으면 집 같은 곳으로 정해서 집처럼 꾸미고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만화방을 꼭 찾고 싶었는데, 시내 만화방이 문을 닫았더라고요. 가까스로 ‘열린 글방’이라는 곳을 찾아서, 사장님께 부탁해서 촬영했죠. 본의 아니게 PPL을 하네요(웃음). 버스는 동진버스에 연락해서 여쭤보니 허락해주셔서 섭외했고요.



36d8c5e62be97d47e51ab513cc592b3b_1614754448_4197.jpg


모더 1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도 중요한 소재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가족의 모습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남현

가족 구성원 중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 건, ‘영화에 가족이 나오면 당연히 아버지가 나와야 한다’는 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등장하는  순간이 필요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해서 아버지를 굳이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유림’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부모님을 여읜 ‘바다’의 친척이에요. ‘바다’의 집에서 함께 사는데, 이런 걸 보통 ‘더부살이’라고 하죠. ‘바다’의 집에서 유림을 돌봐주고 있다는 설정이었는데, 영화 전개상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바다’라는 인물을 설명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가족을 구성해보니, ‘바다’보다 ‘바다’의 엄마에게 더 궁금증이 생겼어요. 항구 마을이다 보니 아이들만 집에 있는 일도 잦을 것 같았는데, 이럴 때 혼자 있는 아이들을 한두 명씩 다른 집 엄마들이 돌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영화 속 가족 형태를 설정하게 됐어요.   


모더 1

아버지의 부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네요.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남현 감독님께서는 영화 전공자가 아니신데요,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셨나요? 앞서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어떤 계기로 영화인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남현

이번 씨네마실에 참여한 감독 중 다수가 영화 전공자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지금 강릉 아닌 다른 곳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려면 영화과가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3의 객기였달까요(관객 웃음). 학교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진 않고, 근근이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 전공과 무관하게 그 전부터 영화인의 삶이 시작됐는데,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게 가끔 후회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더 1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외 활동은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보기 좋습니다(관객 웃음).

지금부터는 관객분들 질문을 받아볼게요. 질문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관객 2

조남현 감독님께 여쭤봅니다. <크리스마스에 바다>를 촬영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무엇인지, 또 감독님이 보시기에 가장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 장면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남현

여태껏 만들어온 영화에서 지켜온 것들을 부정하는 데 주력했어요. 당연하게 해온 작업을 최대한 안 하는 식으로요. 예를 들면 (기술적으로) 컷을 나누는 것 외에 다른 것들에 더 집중했어요. 시나리오에 ‘고요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고요하다’는 말을 문자로 읽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건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봐도 조금 부끄럽지만 ‘침엽수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  이런 문구가 시나리오에 들어있어요. 최대한 공간과 그 공간의 소리를 담고 싶었고, 인물이 움직이는 동선으로 고요함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죠. 결과적으로 잘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어요. 

처음부터 만들고 싶은 톤과 제일 잘 맞아떨어졌다고 느끼는 장면들은 - 멀리서 지켜보는 장면들이요.  ‘바다’가 온종일 밖에서 시간 보내고서 다시 집에 들어오는데 동생들이 마중 나와 있는 장면이나, 형제들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 밤바다를 같이 지켜보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그 장면들은 대체로 컷을 나누지 않고 한 장면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대만족’이라 할 만한 장면은 없었던 것 같고요(관객 웃음). 편집하면서 ‘이 정도면 됐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렇게 객기를 부렸는데 이 정도로는 찍었네’라고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관객 3

<용서>에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못하겠다’고 말할 때, 이미 팔이 반 정도 잘린 상태였잖아요. 그때 주인공의 감정과 그 뒤로 주인공이 느꼈을 감정이 궁금합니다.

 

조찬휘

주인공은 거짓된 사과를 받았고, 본인도 어쩔 수 없이 가해자를 용서했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용서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거고, 그래서 팔을 자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팔을 잘라도 피가 안 나는 이유가, 그 마음조차 진심이 아니었던 거죠. 가해자의 잘못을 용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너무 힘드니까 용서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으로 팔을 자르니 피가 안 나는 거죠. 그런데 팔이 잘리면서 점점 피가 나기 시작해요. 그러다 팔 안쪽의 무언가가 톱날에 걸리면서 더는 잘리지 않아요. 본심은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지 않고, 아직도 화가 나서 용서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팔 자르기를 멈추고, ‘아, 나는 지금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구나,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깨닫고 ‘(용서를) 못하겠다’라고 말하면서 팔을 자르다 만 거예요.

 

모더 2

저희도 궁금했던 점인데 날카롭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해요(관객 웃음). 다른 질문도 받아볼까요? .

 

관객 4

조남현 감독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동기로 <크리스마스에 바다>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보통 자전적 이야기를 다룰 때는 다큐멘터리를 선택하잖아요. 그런데 극 영화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다큐멘터리 작업을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또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남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학 전공이고, 학교에서 영상을 공부하지 못하는 게 너무 슬퍼서 그나마 영상을 많이 다루는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으로 삼고 있어요. 개인적인 동기로 이번 영화를 만들었지만, 원래 극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사람인지라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 영화를 택한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당연히 고려했죠. 여전히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고, 언젠가는 다큐멘터리도 꼭 만들고 싶어요. 미래 숙원사업이랄까요. 장애가 있는 형제를 둔 가족이면 어쩔 수 없이 함께 겪는 일들이 있어요. 차별, 안전에 대한 우려, 부모님의 맞벌이도 그렇고, 형제인 저마저 밖에서 일하는 상황에 성인이 된 발달 장애인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이런 고민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고 싶은데) 정말 잘 해보고 싶은 작업이라, 계속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객 4

조남현 감독님께 한 가지, 그리고 두 감독님께 공통 질문 한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바다> 중 패닝(panning, 피사체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를 함께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기법) 장면에 관해 궁금한 게 있어요. 주인공이 방파제를 따라 걸어갈 때의 패닝 장면은 단절되거나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고, 저녁 무렵 주인공을 마중 나온 가족들을 보여주는 패닝 장면은 연결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패닝 기법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두 감독님은 감독도 하고 촬영도 하셨는데, 여기서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을 느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조남현

항구 패닝 장면은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이었어요. 주인공이 지금 방파제를 향해 걷고 있고, 가려고 하는 범위는 여기까지다, 라는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주인공의 첫 패닝 장면과 집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을 담은 패닝 장면을 연결해 생각해보면, 방파제 밖 세상을 구경하는 건 실패했지만, 누군가 마중을 나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느껴지도록 연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 연출과 촬영을 같이 한 점에 대해서는, 조찬휘 감독님이 저한테 ‘두 가지를 같이 하면 정말 안 되겠다’고 얘기했었기 때문에(관객 웃음) 찬휘 감독님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조찬휘

네? (웃음) 저는 촬영을 더 많이 하지만, 연출과 촬영 모두 재미있습니다. 영화 작업을 할 때 어떤 때는 사운드나 조명 파트를 맡는데, 각 파트마다 다른 매력이 있어요. <용서>에서는 연출과 촬영을 함께 맡았는데, 재밌었어요. 문제는 낮에 시작한 작업이 다음 날 해 뜰 때 끝난다는 거예요(웃음). 낮에 시작할 땐 밤 11시 쯤 끝나겠거니 했는데, 촬영장 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해가 뜨고 있는 거예요.

그때 ‘아, 내가 연출할 때는 촬영 감독을 따로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출을 생각하면서 촬영 구도도 잡고  조명까지 다 만지다 보니까… 각각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일을 혼자 다 하는 게 무척 버겁다는 걸 느껴서 앞으로 연출을 맡게 되면 가급적 촬영감독은 따로 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남현

저는 ‘두 역할을 나누기 힘드니 내가 둘 다 해야겠다.’, ‘개인적 동기로 시작한 작품이고, 적절한 보수도 지급하지 못하니 무거운 역할들은 내가 해야겠다.’ 혹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촬영에 관한 고민을 누군가와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내가 둘 다 해야겠다’는 생각에 연출과 촬영을 전부 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촬영감독이 따로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깨달았죠. 구도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배우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는 상황이 많았거든요. 일정은 늦어지고 날씨는 추워지는데, 제가 결정을 못 내려서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다 차에 타라고 하고 저 혼자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면 ‘자, 다들 다시 나와주세요.’ 하는 상황들이 벌어졌는데(관객 웃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더 1

저도 감독과 연기를 같이 했던 경험을 해봐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게 얼마나 만만치 않은 작업인지 공감합니다. 마지막 질문 받아볼까요?

 

관객 5

조남현 감독님은 <크리스마스에 바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우회적 방식으로 담으려 했다고 하셨는데요, 영화를 본 부모님 반응이 궁금합니다. 

 

조남현

부모님은 아직 영화를 못 보셨어요. 감춰두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얼굴 볼 때마다 언제 영화 볼 수 있냐고 물어보세요(웃음). 11월에 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상영할 때 같이 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어떨까요, 두 분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마 아실 거예요 - 제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0 Comments